박스줍는 할머니의 양심 고백

세상이야기 2011.04.02 09:45
박스줍는 할머니. TV에서도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종종 등장하시는 분들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고, 그래서 이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하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박스를 줍고 있고 그것이 그분들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2005년쯤 인 것 같습니다. 자취하는 골목에도 그런 할머니들이 종종 보였습니다. 골목 작은 슈퍼에서 박스를 수거해 가시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슈퍼주인, 아직 할머니는 아니지만 이제 곧 할머니가 되실 슈퍼주인이 박스를 차곡차곡쌓아놔서 그걸 쉽게 가져갑니다. 꽤 많은 양이었습니다. 속으로 잘 되었다 싶었지요. 그리고 슈퍼주인도 참 고운 분이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박스를 리어커에 다 싣고 할머니가 몸빼바지를 뒤적여 뭘 꺼내더니 슈퍼주인에게 줍니다. 천원짜리 두어장처럼 보였습니다. 뭔가 이상했지요. 슈퍼주인이 할머니에게 박스를 파는 것 처럼보였습니다. 뭐 저런 사람이 다있나. 설마 아니겠지했지만 심증은 딱 그랬습니다. 할머니를 따라갔네요.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은근슬쩍 말을 붙였습니다. 참 염치도 없고 죄송하기까지했지만요.

'할머니 힘드시지 않으세요?'
'괜찮여'
'근데 이거 박스 파시면 하루에 얼마나 버세요?' 
'담배펴묵고 밥먹고 살만큼 벌어.'
'네..'
'근데 할머니, 좀 전에 슈퍼주인한테 박스를 사신거에요?' 
당황하시더니 이내 '사긴 미쳤다고 박스를 사 얼마나한다고..' 하시네요.
졸졸따라갔더니 멈추시고 도로한쪽에 앉으시네요.
'저기에서 삼천원주고 사면 오천원주고 갔다 팔어. 이천원어치 박스주으러 다닐려면 한나절은 돌아야되는디, 양심에 없는 짓이라는 것 아는디..., 미안허네'

낯이 뜨거워졌습니다. 내가 공명정대한 박스줍기를 검사하러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이천원짜리 담배한갑은 우습게 펴대는 내가 이천원때문에 양심까지 팔았다 생각하시고, 또 그걸 들켜서 챙피하고 죄지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요. 할머니는 남들은 힘들게 돌아다니면서 박스를 줍는데, 자기는 편법으로 그렇게 이천원 버는 것이 죄스러우신 모양이었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던 것이지요.



리어카 하나 가득 박스를 싣고 팔면 얼마나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평생을 자식들, 그리고 그분들은 특히 선진국되야한다고 온갖 고통을 나라로부터 받고 살아오신 분들인데 이제 박스를 줍고 다니게 하는 이 사회가 새삼 한심하게 느껴진 것은 물론입니다. 게다가 그래도 먹고 살려고 여전히 사회가 가르치고 있는 경제관념을 동원해서 일종의 '박스소매상'을 하고 계신 것이지요. 도매로 박스 띄어다가 소매로 박스를 넘기는 그래서 하루에 몇천원 벌어서 하루하루 살고 계신 것이네요. 

그 할머니도, 골목슈퍼 아주머니도 잘 못한 것 하나 없습니다. 박스아니면 벌이가 없는 분이나, 조금만 나가면 대형마트가 있는데 다른 수가 없어 골목슈퍼의 문을 닫지 못하는 아주머니나 이삼천원은 벌어야할 돈인지도 모르지요.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현명하게 살고 계시다는 생각을 합니다. 편법도 죄도 아닙니다. 이 세상은 대놓고 그렇게 굴러가는 사회인데, 아주 딱 맞게 살고 계신 것이지요.

언젠가 인터넷에서 박스를 줍는 노인들끼리 싸움이 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 지하철 짐을 놓는 선반위에 있는 버려진 신문을 한부라도 더 모으려는 할아버지들도 종종 보았구요. 얼마전에 들어갔을 때에는 선반위에 신문을 버리지 말고 신문 버리는 통이 따로 있으니 그곳에 버리라고 되어있더군요. 미관에 좋지 않고 재활용에 도움이 된다고요. 어쨌든 어느 할아버지들의 수입이 줄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옛 생각이 갑자기 든 이유는 어제 인터넷으로 주문한 애기 기저귀가 도착한 박스를 보고서였습니다. 기저귀박스보다 엄청난 크기의 박스와 그 박스안의 빈 곳을 채우기위해 넣어진 많은 양의 구겨진 종이들. 박스를 버리러 밖으러 나가니 오늘도 역시 엄청난 양의 박스들이 쌓여져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딜가나 박스가 널려있습니다. 몰에가도 두꺼운 좋은 재질의 박스에 물건을 담아아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들도 좋은 박스에 담겨오고. 그래도 주워파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곳에도 굶어죽게 가난한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지만, '박스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자체가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미국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엄청나게 쌓여있는 버려진 박스들을 보면서 그 할머니가 이걸 봤다면 분명 '횡재'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네요.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그 할머니의 마음도 오늘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